이 글에서는 2022년과 2023년에 한국 정부의 공공기관 세종학당재단에서 개발한 교재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초급》의 발간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의를 다룬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어는 최근 전 세계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외국어 중 하나이다. 이 사실은 구태여 어떤 데이터나 통계를 제시하지 않아도 근래 K-POP과 영화, 드라마의 영향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만으로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1998년에 처음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필자도 약 25년 남짓한 시간 사이 벌어진 이 드라마틱한 성장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그래서 이 상황을 일종의 ‘사회 현상’으로 보고 짧은 시간 폭발적으로 일어난 이 현상을 수용하는 한국인들의 모순적인 인식 양상과 우려되는 문제점들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한국어 학습자의 다양성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사실 또한 한국어 교육에서 새롭게 부각되는 이슈 중 하나이다. 이제는 더 이상 ‘한국어 학습자’라는 표현에 동일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즉 누군가가 한국어를 배우는 장면은 이제 수많은 다양성을 갖게 되었다. 다양한 목적으로,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한국 안과 밖에서, 또 정규 교육과정의 안과 밖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그런 한편, 이제 한국어를 배우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또는 ‘배움의 기회조차 박탈된’ 학습자에 대해서도 살펴볼 시기가 되었다. 이주자, 난민, 주류 언어권이 아닌 모국어를 가진 학습자, 어린 아동 학습자와 고령의 노인 학습자 등의 소수자도 한국어를 배우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한 배움의 권리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누구나’ 한국어를 배울 권리가 있다면, 이들 가운데 그 권리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누가 있으며 또 이들이 한국어에 접근하는 데 있어 방해물은 무엇인지 공정성이라는 시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시각 장애를 가진 한국어 학습자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비장애인의 관점에서는, 아주 단순하게 시각 장애인들에게 외국어가 필요하다면 그 제약을 고려해서 음성 언어를 배우도록 배려하는 것을 일종의 해결 방안으로 떠올릴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음성’을 듣고 ‘말’을 하는 것을 넘어, ‘글’을 알고 읽고 싶다면 무엇이 장벽이 될까? 즉 음성 언어에 국한되지 않고 문어로서 한국어 점자를 포함하는 한국어를 배우고자 한다면 어떤 것들을 고려해야 할까? 그리고 이 장벽을 허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글에서는 시각 장애인의 한국어에 대한 접근성의 문제를 교재 개발의 경험으로부터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한국어교육의 성장과 복지 정책적 관점
먼저 다루고 보고 싶은 문제는, 언어 정책의 일환으로서 한국어교육이 그간 어떤 역할을 해 왔으며, ‘장벽 없는’ 한국어 학습이라는 우리의 주제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와 관련한 것이다. 그간 한국어교육의 정책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지점은 한국 내 한국어 교육에 있어 교육 기회의 제공에는 일종의 복지 정책적 성격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정부 당국은 언어적 소외자, 언어적 약자들을 대체로 ‘온정적이며 친절한’ 자세를 취하되, 동시에 ‘하향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으로 한국어 교육의 대상자로 삼았다. 즉 “한국에서 먹고 살려면 한국어를 해야만 하고 이것이 한국 사회의 통합에 기여하는 일이니 한국어를 빨리 잘 배워야 한다.”는 전제하에, 결혼이주자에게는 집안 예절과 가사, 육아에 익숙해지도록, 고용 허가를 받은 이주노동자에게는 노동 환경에 적응하며 안전에 신경 쓰도록, 공교육에 들어온 학생들에게는 한국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한국어로 학교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복지의 사다리를 내려주고자 하였다. 이러한 한국어교육의 정책적 방향이 ‘교육 기회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적극적인 것은 사실이다. 한국 정부는 이주자에 대해 각각의 유관 부서에서 복지의 일환으로서 한국어교육을 정책화한 영역이 존재하며, 이들에게 ‘정착과 생존’의 도구로서 한국어교육이라는 중요한 기회를 베풀어 주고자 하였다.
언어 정책으로서 한국어교육이 유지해 온 배경과 문화에 대해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는 무척 많지만 긴 언급은 접어두기로 하고, 이러한 방향성이 기회균등을 위한 공정의 순기능으로 작용하였는지 사회적 약자를 낙인하는 시혜적 성격으로 역기능을 보였는지는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면에서는 언어 사용의 주체가 주장해야 할 ‘권리로서의 언어’가 언어 사용의 대상자로서 ‘의무로서의 언어’로 뒤바뀐 측면이 있다는 점도 짚어두고자 한다. 한국은 나날이 언어 다양성이 증대되고 있는데, 이러한 정책적 관행을 보면 언어 다양성의 시대에서 드러날 여러 가지 현상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우려되기도 한다.
한편으로, 한국어를 원하는 수요 집단을 더 둘러볼 때, 이주와 이동이라는 조건적 진입 장벽이 아닌 신체적 장애 등 물리적 진입 장벽에 대해 돌아보지 못했다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에게 놓인 장벽이 ‘높게 세워져 있음에도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장애인과 외국어 학습의 권리
2023년 기준 한국의 등록 장애인 수는 264만 2천 명에 이른다. 장애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 대비 5.1%로, 한국인 100명 중 5명은 장애인이라는 뜻이다. 결코 적지 않은 수이지만,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장애인을 찾아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왜 그런 것일까. 비장애인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사회적 활동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이 일차적인 문제겠지만, 한편으로 장애인 스스로 비장애인과 교류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2019년 한국의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비장애인 가운데 장애인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비율은 17.9%에 불과하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로 벌어지는 이동권의 박탈, 알 권리로부터의 소외, 디지털 정보 격차의 이슈는 언제나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그런데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활발하게 교류하지 않게 되면, 비장애인은 장애 인식을 개선하는 일을 잊게 되고, 또 그러한 사실이 다시 장애인을 폐쇄적으로 만드는 악순환이 생긴다. 비장애인들의 왜곡된 시선은 장애인을 단순히 ‘불쌍한 사람’이라는 틀에 가두게 되고, 복지의 혜택이 필요한 수동적 존재에 머무르게 한다. 앞서 언급한 한국어교육에 잠재된 ‘시혜적 관점의 복지 정책’의 그림자가 여기에서도 어른거린다.
국제적인 담론의 장에서 장애인에 대한 관점이 ‘handicapped – disabled – impaired’와 같은 인식의 개선과 함께, DEI (Diversity, Equity, Inclusion) 라든지 IDA&E (Inclusion, Diversity, Accessibility, and Equity) 의 논의를 풍부하게 진전시키며 전환적 경험을 누적시켜 온 것에 비해, 한국의 경우 여전히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의미적 계급을 상승시켜 놓은 것 이외에는 형식과 내용에서 진전된 논의를 보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비장애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사소한 장벽들이 무엇인지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최근 한국의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활약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도움 없이는 편의점에서 생리대와 컵라면조차 제대로 된 정보를 알고 살 수 없는 시각장애인 유튜버들의 일상 속 영상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일으켰으며, 실제로 점자 표기를 한 컵라면을 판매하는 등 ‘장벽 허물기’의 실천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야기가 이어진 김에, 시각장애인의 외국어 학습 권리의 문제를 거론하고자 한다. 외국어 학습은 언어의 특성상 시각 및 청각장애와 관련이 크다. 시각장애는 음성언어를 식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청각에 비해 언어 습득의 현실적인 가능성이 높다. 또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는 선천적 시각장애인 경우보다는 사고나 질병으로 시각을 잃게 된 후천적 시각장애의 경우가 훨씬 더 많아서(한국의 경우 후천적 시각장애자가 92.4%임) 외국어를 배우려는 의향이 있고 조건이 가능하다면 음성과 점자를 기반으로 교수-학습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더군다나 시각장애인도 일반인과 동일하게 이주, 이동에 대한 자유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아동과 청소년의 경우 부모를 따라 이주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새로 정착하게 될 나라의 언어를 외국어로서 학습하고 책을 읽고 문서 활동을 하기 위해 점자를 포함한 외국어 학습이 권리로서 보장될 필요가 있다.
세종학당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초급》의 개발 과정
일반적인 한국어교육의 수요 측면에서 보면,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한국어를 제2언어나 외국어로 학습하게 될 가능성은 실제 별로 없다. 이들은 외국어 학습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각 감각에 장애가 있기 때문에 외국어를 학습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과 노력이 대단히 크고, 이로 인해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외국어 학습의 동기를 거의 갖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라고 해서, 실수요자가 소수라고 해서 이들에게 주어진 진입의 장벽을 당연시할 수는 없다. 비장애인의 관점에서는 배려의 차원으로 보이겠지만, 장애인의 관점에서는 언어의 학습 권리 또한 참정권, 이동권과 같이 일상의 문제인 동시에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된다.
첫머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종학당재단은 한국 밖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어 교육과 한국 문화를 알리고 교육하는 한국 정부(문화체육관광부)의 산하 공공기관이다. 이 기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초급> 교재를 만드는 사업을 기획한 의도는 사실 이러한 고민과는 별개로 대단히 단순한 뜻이었다. 한국에는 근로자가 있는 직장에서 법률이 정한 기준(약 3.1~3.8%)만큼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는 법이 있고, 특히 공공기관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을 위한 공익적인 목적의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물론 이 법은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사업체는 이 법률을 여러 가지 이유로 잘 따르지 않고 있으며, 정부에 부담금을 내는 것으로 고용을 대신하고 있다.) 세종학당재단 역시 이 일을 소위 ‘정상인’의 관점에서 재단의 사회적 책무 또는 일종의 사회공헌 차원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여러 연구자는 교재 제작 작업을 맡게 되면서, 이러한 시혜적인 정책이 주는 뉘앙스를 극복하고 싶었다. 공정성 (equity) 과 접근성 (accessibility) 을 토대로 삼아 최대한 시각장애인의 ‘당사자’적 관점에서 장벽을 제거하고 기대 가능성을 충족시키며, 나아가 삶의 질 제고를 아울러 고려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하여 시각장애인 학습자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 자료를 개발하여 시각장애인의 한국어 학습 범위를 확대하고 교육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하는 의도로 교재 개발 방향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처음 시도하는 일이다 보니 단원을 다 만들었다가 취소하고 새로 만들기도 하고, 자문을 구하며 글자 크기나 점자의 배치를 여러 차례 바꾸기도 하였으며, 또 녹음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재녹음을 하는 등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도전과 좌절을 겪으며 교재 제작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시각장애 관련 전문가, 한국어교육 전문가, 점자 출판과 음성 자료 제작 전문가 등 유관한 전문가들이 이 새로운 시도 과정에서 부단히 소통하고 토의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이 교재는 새롭게 만들어진 교재가 아니라, 세종학당재단이 가진 등급별 한국어 교재의 라인업 중 <세종학당 한국어 입문>, <세종학당 한국어 초급 1>, <세종학당 한국어 초급 2>의 세 권의 책을 시각장애인용 초급 교재로 재구성한 것이다. 단순히 언어 교재를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한국어의 문자에 해당하는 한국어 점자를 점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새로운 교수요목을 설계하여 포함하였고, 점자가 포함된 서적인 만큼 책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어 여러 권으로 분권이 되었다. 2021년 중반부터 2023년 초까지 총 2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여섯 권의 초급용 한국어 점자 교재를 만드는 성과에 이르렀다.
필자를 포함한 교재 개발진은 교재를 개발하기에 앞서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으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시각장애인을 어렵게 섭외하여 이들이 겪었던 경험, 한국어 학습에 대한 도전, 다양한 학습 요구를 청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 개발의 여덟 가지 원칙을 세웠다.
⑴ 한국어 숙달도 수준을 왜곡하지 않는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하여 비장애인에 비해 낮은 언어 숙달도를 요구하는 것은 다른 의미의 차별이 된다.
⑵ 시각이 개입하는 모든 자료는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삽화를 포함하여 그림 찾기, 장면 보고 말하기, 줄긋기 등 언어 활동의 영역에서도 다른 감각기를 활용하도록 수정한다.
⑶ 노출 어휘량을 통제한다. 등급별 필수 어휘는 보존하되 과한 예시, 등장인물의 인명 등은 과감히 낮추어 학습의 혼동을 막는다.
⑷ 점자와 인쇄 활자를 균형 있게 공존시킨다. 점자는 UV 인쇄로 하여 보존력을 높이고, 저시력자를 위해 글자 크기는 키우고 글꼴을 통일한다. 색맹자를 위해 색은 단순화한다.
⑸ 한국어 점자를 점진적으로 교수요목화 하여 제시한다. 점자 학습은 대단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나, 그렇다고 점자를 원하는 학습자에게 장벽을 두지 않도록 한다.
⑹ 오디오북을 교육 자료라는 취지에서 재구성한다.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방식이 아닌 음성이 다른 성우가 번갈아 들려주며 음성 언어에 대한 지각 정보를 적절히 제공한다.
⑺ 혼자 학습하는 상황과 도움을 받아 학습하는 조건을 고려한다. 또한 시각장애인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워크북이나 별도의 어휘집을 만들지 않는다.
⑻ 문화 요소를 돕는 촉각 자료를 제안한다. 한국의 문화 요소(예컨대 한옥, 한국 지도) 등은 손을 이용하여 촉각으로 형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UV 인쇄하여 제시한다.
이 교재의 전체적인 학습 범위는 한국어의 문자(한글)를 알려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자기소개와 가족 소개, 일상생활, 취미 말하기, 물건 사기, 날씨 말하기, 음식 주문, 휴가 계획, 약속 정하기, 건강 상태에 대해 말하기, 배달 주문하기 등의 대화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까지 포괄하고 있다. 한국의 표준 한국어 교육과정에서 2급 수준의 한국어 학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실증적인 자료는 없지만 비교하자면 CEFR의 A1과 A2.1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대략적으로 말할 수 있다. 총 6권 중에 첫 두 권은 영어 점자로 번역하여 영문판을 만들었는데, 서책으로 출판은 되었지만 온라인으로는 공개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이 교재가 발간된 지 이제 2년을 넘겼지만, 이 교재를 통해 시각장애인이 한국어를 배웠다는 구체적인 사례와 교재에 대한 피드백은 아직 받지 못하였다. 다만 이 교재가 개발된 직후 한국과 해외에 여러 도서관, 주요 기관에 무상으로 제공한 만큼, 이 존재가 조금이나마 전달이 되고, 평소에 한국어에 관심을 가진 한국어 학습자가 그 존재를 알아주고 도전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한 사람이 누구이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초급>의 개발 과정은 대단히 어렵고 힘들었다. 원본 한국어 교재에 있는 적지 않은 ‘장벽’을 보며, 그 장벽을 어떻게 하면 낮출 수 있는지 고민하며 토론한 시간이 매우 길었다.
그런 한편으로, 여기에 너무 과도한 의미가 부여되는 것도 조심스럽다. 필자를 포함한 교재 개발자들은 한국어교육의 연구자로서, 특수교육의 연구자로서, 교재 개발자로서 각자의 고민들을 최선을 다해 풀어보고자 했으나 해결되지 않은 지점도 너무나 많고, 다시 보면 여전히 잘못된 지점도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목소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정부 공공기관의 하향적인 요청에 따라 작업이 이루어진 것도 애초부터 이 교재가 가진 한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교재를 실제로 만나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적으며, 구체적인 사용자 피드백조차 쉽게 받을 수 없었기에 이 교재 개발 과정과 평가가 대단히 막연한 것도 사실이다. 거창하고 큰 의미보다는, ‘누구나 한국어를 배울 권리’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에 대해 소박하고 분명한 의미를 찾고자 한다.
장벽 없는 한국어 교재와 한국어를 배울 권리에 대해 논의하고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접근성이나 공정성을 논하기에 앞서, 최근 여러 면에서 한국어 교재가 편견이나 차별적 요소에 대해 대단히 유의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한국어 교재에는 많은 고정관념과 편견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한국어 교재에 등장하는 소재는 아직도 고정화된 성인지나 정형화된 미모, 한정된 직업군 등 획일적인 사고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장벽을 허물고 접근성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포용성과 다양성을 수용하는 방향에서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한국어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한국어가 꾸준히 ‘접근성의 장벽을 낮추는’ 근사한 사건들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한국어를 한자로 변환하여야 문어 생활이 되었던 15세기에 한국어의 문자인 한글의 창제는 보통 사람들의 정보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바꾼 사건이었고, 19세기 말 갑오개혁을 통해 국가의 공문서를 한국어와 한글을 기본으로 작성하게 하거나, <독립신문>의 창간호에서 서재필이 ‘상하 귀천이 다 함께 알아보기 위하여’ 한글을 사용한다고 밝힌 사건 들은 한국어의 역사에서 장벽을 낮추는 일에 진심이었음을 되새기게 한다. 이 작업이 한국어와 한국어 공동체가 경험할 다양성의 시대 앞에서 작은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한글 점자로 표시된 안내문(니콜라 프라스키니)
English translation here.